교회소개

주여, 이제 회복하게 하소서

교회역사


초창기 1975-1984

1975년 6월 영신교회가 창립되던 해는 군사정권 제3공화국 유신헌법이 선포되면서(1972년 10월) 언론과 재야민주세력이 극심한 탄압을 받던 해였다. 그러나 1972년 4월부터 시작된 새마을 운동은 가난을 털고 일어나는 하나의 분수령이 되기도 하였다.
최규철 목사는(1934년 3월 20일생, 훗날 영신교회 원로목사) 경기도 김포군 오정면 고강리 49번지 오쇠리(현재 부천시 고강동 49)에 허름한 2층(18평)을 세를 얻어 일곱 사람이 창립예배를 드렸다. 오쇠리는 당시 미군부대 양색시와 일용근로자 원주민들이 어울려 살던 그린벨트, 농촌지역이었다. 그 후 미군부대가 철수함에 따라 더 이상 교회발전을 기대할 수 없어서 1977년 3월 25일 서울 강서구 방화1동 168의 39번지 과수원집 2층으로 두번째 이전하여 일명 '과수원교회'라고 불리었다.
이전한지 6개월 후 교인이 50여명으로 부흥하였으며, 그 해 12월 신축아파트 단지 조성으로 과수원교회의 출입이 어려워짐에 따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168의 12번지 독립가옥 2층으로 옮겨지니 모양새가 너무 허술하여 일명 '하꼬방교회'라고 하였다.
1978년 접어들면서 교회는 조금씩 체제와 조직이 갖춰지기 시작하고, 교인 수의 증가로 1981년 강서아파트 상가 2층(48,77평)으로 옮겨 이전 감사예배를 드리니 이것을 '상가교회'라고 칭하였다.
1981년 온교인이 합심하여 상가건물을 매입하고, 1979년 8월부터 전세로 살던 사택도 그해 8월에 강서구 방화1동 168-44 강서아파트 1동 103호를 매입하여 교회 재산의 확충에 힘쓰는 해였다. 1979년 9월 9일 새로운 교회 비전을 위하여 건축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그해 9월 29일 교인들의 열성으로 건축헌금 작정액이 1천7백8십7만원 이였다.


정착기 1985-1994

교회를 개척한지 10여년이 지나도록 당회가 없었으나, 1985년 10월 13일 처음으로 장로 2인(신경순, 김철교), 권사5인(황순여, 이월순, 조영숙, 윤정희, 이은희)을 피택하고 1986년 8월 31일 중직자 임직식을 갖고 1986년 9월 7일 최규철 목사를 위임목사로 추대하였다.
최목사의 목회철학인 '3중사역'인 전도사역, 구제사역, 교육사역에 열정을 쏟는 가운데 방화동 독거노인가정 300여 가정을 지원하면서 1988년 9월 28일 전도대와 심방조가 조직되고 축호전도와 이슬비편지 전도로 교회가 발전하며 정착을 하기 시작했다.
1986년 강서구 방화동 442-2는 일명 능말지역으로 개화산 밑에 농촌부락으로 그린벨트지역인 독립가옥(대지184평, 건평50평)을 구입하여 교육부서로 사용하는 제2영신교회 부속건물이었다. 1990년 9월에는 해외 선교헌금을 건축 중인 중국 길림성 조선족 가정교회를 직접 방문하여 조용석(병두) 집사가 전달하였다. 11월에는 정부주택개발시책에 따라 능말주택을 서울시에 매각하였으며, 1992년 강서구 방화동 산163-1(종교부지)에 대지191.78평을 5억6천3백만원에 매입하게 되었다.
11월에는 제2대 중직자를 장로2인(조병두, 이상운), 안수집사(조영구, 이홍길)을 선출하고, 이듬해 5월 30일 임직식을 거행하였다. 8월에는 지하2층, 지상1층 가건물 건축허가를 받고 기공예배를 드린 후, 상가교회를 떠나 감격의 입당예배를 5월 22일 드리고(지하1층 91.78평, 지하2층 161.09평, 지상가건물 22,4평) 8월에 지상5층 건물 증축허가를 받게 되었다.


부흥기 1995-2004

1995년 표어를 “전도 교육 친교의 해”로 정하고, 성전완성과 100명 돌파를 목표로 순조롭게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당초 교회 계획은 5층으로 되었던 계획이 인근 진로아파트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4층으로 변경되었다. 조망권 침해와 집값 하락을 주장으로 맞서는 중 교회가 이웃과 갈등을 빚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여 1995년 10월 1일 지상4층으로 하겠다는 합의로 마무리되었다.
1997년 IMF 사태로 말미암아 지상 증축공사는 한동안 중지상태에서 교회의 일꾼 선출을 위하여 1998년 1월 3일 피택 장로3인(조영구, 이홍길, 김주현), 안수집사9명(송영호, 박효선, 박신식, 김동운, 정부남, 유용준, 홍병남, 이희한, 황지태), 권사5명(박추자, 이분자, 윤봉숙, 유분옥, 류화), 우인복(조병두모)씨를 명예권사로 추대하였으며 조영숙 권사 은퇴식을 함께 거행하였다.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2000년 12월 22일 지상증축 공사가 끝나고, 2001년 10월 5일 준공검사가 완료되었다. 뒤돌아보면 1993년 8월 기공식부터 새 성전건축까지 8년이란 세월이 소요된 긴 건축공사였다.
새천년인 2000년 11월 5일 장로2인(김동운, 유용준), 안수집사7인(김기봉, 신승욱, 양익승, 송우성, 이동은, 김지하, 김창우), 권사15인(김낙일, 이정순, 임승자, 최현자, 김연식, 서귀례, 최명선, 이경심, 오옥희, 신삼덕, 김순덕, 최은숙, 문명숙, 성기순)을 피택하고, 이듬해 5월 13일 새 성전에서 임직식을 거행하는 감격을 맞게 되었다. 2003년 3월에는 영신의 아침 창간호가 발행되어 계속적으로 발행하게 되었다.
2004년 7월 15일 최규철 목사를 원로목사를 추대하고 12월 19일 원로목사 은퇴예배를 드렸다. 아울러 12월 26일 제2대 담임목사로 이재욱 목사가 부임하게 되었다.


성숙기 2005-2015

제2대 담임목사 이재욱 목사는 “믿음 때문에 행복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표본으로 삼아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고, 지역사회를 섬기며, 이웃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세계와 열방을 품은 선한 일꾼들이 모이는 행복공동체이다.”라는 비전을 선포하고, 선교와 예수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 발돋움 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2005년부터 시작된 청년부 단기선교(인도네시아)가 2006년~2014년까지 중국 단동, 캄보디아, 사랑의 집짓기(캄보디아, 필리핀), 러시아, 중국북경, 해외 선교사 파견(안성호 목사)하였고
2006년 11월 제2대 이재욱 목사 위임식과 영신교회 30년사 출판기념식 및 제5대 임직식을 거행하였으니 장로2명(송영호, 박효선) 안수집사5명(황준환, 김태섭, 이용길, 이기재, 정병초) 권사10명(호진애, 강경순, 염복희, 문용순, 안규복, 황복순, 김정자, 김경순, 유경아, 김명숙)이 임직 받았다. 2006년 2월에는 지역사회를 위해 ‘늘푸른노인교실’을 개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7년 1월 김동운 장로를 주축으로 ‘길꽃도서관’, 2009년 2월에는 ‘우장산숲속도서관’을 강서구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2009년 제6대 임직식에는 장로2명(정부남, 이희한) 안수집사7명(조시형, 박영호, 박재용, 송재훈, 남상균, 배수만, 이현규) 권사20명(황양순, 안평환, 김영순, 김혜정, 방인숙, 이원하, 이민식, 김선자, 김은영, 권상자, 박명숙, 오예순, 전정자, 김보희, 이상범, 강옥순, 최진희, 김명보, 최정자, 박순주)이 임직 받았다. 교회 찬양의 활성화를 위해 힘스, 여디디야찬양단이 창단되었다.
2011년 10월에는 '예빛영신문화원'을 개원하여 지역주민과 교인들의 문화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매년 창립기념주일 기념전시회도 개최해 오고 있다. 2011년 12월에는 항존직 은퇴식이 있었다. 장로(조영구) 협통장로(노태성) 권사(성기순) 각 1명씩이 은퇴 하였다.
2012년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으로부터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상을 수상하였으며, 2013년 9월에는 베트남 선교지 방문(안성호 선교사)하여 성도들의 사랑을 전달하였다.
2014년 4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에 함께하는 교회로 패를 전달 받아 부착하였다. 3월에는 사명자수련회를 개최하였고, 10월에는 전교인 수련회와 체육대회로 영육간의 건강을 다지는 기회를 가졌다. 11월 제7대 임직식에서는 원로장로2명(이상운, 김철교) 명예권사9명(이수자, 남순덕, 양규순, 정순임, 이춘흥, 정일순, 신성덕, 이순희, 김정진)추대, 안수집사1명(이용길) 권사3명(박추자, 이정순, 김정자)은퇴 안수집사2명(고윤진, 구재웅) 권사3명(이경은, 박옥수, 구연임)이 임직 받았다. 우리 교회는 수 년간 1월 1일 개화산 해맞이 행사시 떡국봉사도 해오고 있다.
2015년은 교회창립 40주년 뜻깊은 기념을 위해 6월 예빛영신문화원 기념전시회를 열었고, 연합성가대는 10월 기념연주회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발표하였다.